[부처스 크로싱] 검은 바다와 더스트 보울까지
끝이 없는 평원을
가득 매운, 마치 바다처럼 일렁이는 검은 물결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은
거대 기업형 농장이 되어버린 미국 중부의 평야 지대는 1800년대 초,
헤아릴 수 없는 들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야라고 불리던 야생의 미국 초원 지역으로 진출한
사냥꾼들이 증언한 장면이 바로 검은 바다다. 최소 3천만
마리, 최대 6천만 마리까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들소(바이슨)는 그 땅의 지배자였다.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미국 원주민들도 이 들소를 사냥해서 머리부터 발굽까지 버리는 것 없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이 들소를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의례로 기렸다. 1840년대 후반, 사냥총과 납탄환으로 무장한 이주민 사냥꾼들은
들소를 무한한 자원으로 여겼다. 그들은 들소를 학살하였고, 수천만
마리의 들소가 100년도 안되어 멸종 위기까지 몰렸다. 들소
고기만을 위해 사냥하였다면 보관, 운반의 문제로 이렇게 많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들소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 유행하였고, 수천 마리의 들소 가죽도
마차 몇 대로 운반 가능했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무지막지하게 들소를 사냥하고, 가죽만 벗기고, 남은 사체는 썩게 버려 두었다. 사냥꾼 한명이 총 한자루로 한 달
안에 최대 5천 마리를 사냥할 수 있었다.
인간은
많은 동, 식물을 멸종시켰다. 대부분은 인구가 늘어나고 생활
환경이 동물 서식처와 충돌하여 서서히 멸종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들소와 같이 무분별한 사냥으로 멸종한
동물도 꽤나 많다. 여행비둘기, 모아새 등이 멸종하였고, 코뿔소, 코끼리 등도 멸종 위기 상태가 되었다. 이런 멸종은 탐욕과 자본주의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개체수를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쓸어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버리게 하는 것이
탐욕이다.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부처스 크로싱]의 주인공 밀러는 들소
사냥꾼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1873년, 이미 들소가 많이 잡혀 가까운 평원에는 많지 않은 시점이다. 밀러는
몇 년 전 로키산맥의 골짜기에서 수천 마리의 들소 떼를 본 기억이 있는 자로, 마침 동부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황야를 방문한 20대 청년 앤드루스의 지원을 받아 사냥 원정을 나간다. 고생 끝에 결국 4천 마리 이상의 들소 학살에 성공했지만, 과욕의 결과로 사냥을 끝낼 시간을 놓쳐 로키산맥의 혹독한 겨울을 맞이한다. 몇
달을 들소 가죽 텐트와 육포로 버티고 살아남았으나, 결국 귀환길에 마차가 강물에 빠지며 모든 가죽을
잃고 만다.
작가는
1960년에 이 소설을 집필했다. 당시 들소는 보호 구역에서
개체 수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고, 황야는 대부분 농장이 된 지 오래였다. 학살당한 들소들에 대한 안타까움, 탐욕과 자본주의, 밀러의 비상식적인 집착, 청년의 성장 등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들소가
사라진 후 초원은 인간의 것이 되었고 대형 농장과 목장이 되었다. 그런데 1900년 초 이 지역엔 거대한 모래 바람이 수시로 불어 농가에 피해를 주었다.
더스트 보울이라고 불리는 사막의 모래 폭풍과 비슷한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는 수천만 마리의
들소가 밟고, 먹이를 먹고, 배설을 하는 과정에서 안정되었던
초원이 들소가 사라진 이후 건조화, 사막화가 진행된 것이 원인이라고 밝혀졌다. 들소 학살이 자연 재난으로 돌아온 것이다.
21세기
인간은 자연을 착취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이용을 꾀하고 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땅을 관리한
덕에 최근엔 더스트 보울이 없다고 한다. 들소도 개채수를 많이 회복하여 수 십만 마리 이상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자본주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착취는 끝나가지만, 이 욕망이 끝난 것은 아니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욕망의 방향을 주시하여야 하고, 파멸적인 결말을 맞지 않게 감시를 놓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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