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행복론

 행복은 왜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일까?

인류는 점점 풍족해지고 평균 수명도 늘어났지만, 오히려 행복지수는 그만큼 올라가지 않았다. 여러 국가 중에는 생활 수준이 높아져도 행복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곳이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조차도 행복지수 조사에서 중간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단순히 배부르고 안전한 상태를 넘어서는 훨씬 복잡한 차원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미드나잇 스완」과 불행의 모습
일본의 소설 및 영화 「미드나잇 스완」을 통해 우리는 극단적으로 불행한 인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수술하지 못한 30대 후반의 트렌스젠더 주인공과 아버지 없이 학대를 받으며 자란 여중생, 그리고 겉보기에 부유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또 다른 여중생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불행’이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특히 주인공은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질까”를 입버릇처럼 되뇌며 살 정도로, 행복에 대한 갈증이 극심하다.
그런데 이들이 잠시나마 행복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바로 희망이 보였을 때다.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달성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감지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행복감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희망이 무너졌을 때 마주한 절망은 생존마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는 ‘희망’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반대로 이를 상실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이 오는지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 높아진 행복의 역치
동물들은 배가 부르고, 안전하게 번식할 수 있으며, 생존에 큰 위협이 없는 상황이면 대체로 ‘행복’이라고 부를 만한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훨씬 복잡한 정신 세계를 지녔고, 지능의 발달은 행복의 문턱(‘역치’)을 높여 놓았다.
예컨대 동물처럼 단 하나의 욕구만 충족되어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0가지 중 1가지만 모자라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상황에 쉽게 빠진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라”라는 권유가 때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려는 기득권의 논리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지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높은 역치를 조금이나마 낮추고,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까?”이다.

희망의 힘과 쾌락적응이론
다양한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금전적 풍요나 소유를 얻었을 때 순간적인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내 그 상태에 적응해 버린다. 이는 ‘쾌락적응이론(Hedonic Adaptation)’으로 설명되는데, 로또에 당첨되거나 오랫동안 원하던 물건을 갖게 되어도 몇 개월 후면 그 전의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일시적인 만족을 넘어 끊임없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으로 ‘희망’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반복되는 소유나 성취는 결국 평범해진다. 그렇다면 어떠한 희망이 우리를 오랫동안 견인해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평생 지속될 수 있는 희망이란
예를 들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희망은 사실 완전히 충족되기가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한 욕구는 계속해서 변하고, 때론 새로이 생겨난 질병이나 노화가 또 다른 난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두고 추구하는 희망’—가령, 매일 조금씩 더 건강해지려는 노력,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는 즐거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주변 사람도 행복하게 해주는 기쁨—은 쉽게 다 이루어지지 않기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목표와 열정을 부여한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도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될 때 인간은 보다 안정되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도하고, 거기서 ‘점점 능숙해지는’ 성취감을 느끼며, 이를 통해 ‘주위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우리의 ‘희망’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희망이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서기
물론, 희망이 좌절되면 그에 따른 상실감은 더욱 클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단계의 희망’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실패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작은 성공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핵심이다. “이번에는 안 됐지만, 다음에는 다를 수 있다”라는 생각이야말로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다. 이런 태도를 유지하려면, 스스로를 꾸준히 점검하는 습관과 주변의 지지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맺음말: 희망이 주는 영속적 행복
결국 인간이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순히 ‘적은 것에 감사하자’라는 조언을 넘어 평생을 두고 추구할 만한 희망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 희망은 너무나 크고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매순간 우리가 살면서 방향성을 잃지 않게 해주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가?”를 계속 고민하고, 그 희망을 조금씩 현실화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들을 이어간다면, 인간은 비록 완전한 만족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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