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사실 물고기가 아니라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어류는 영어로 pisces 또는 fish라고 하는데, 작가도 일부러 fish를 선택했고, 국내 번역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류'보다 '물고기'로 번역했다고 한다. 얼마 전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무슨 내용인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아서 읽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야 접하게 되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었다면 일찍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류'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은 꽤 오래전이다. 계통분류학에 DNA 등 분자생물학적 분석이 접목되면서, 우리가 흔히 '어류'라고 하는 집합은 사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범위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긴 모양이 비슷한 장어와 먹장어(흔히 꼼장어라고 불리는 물고기)는 진화적으로 볼 때 사람과 장어 사이보다 더 먼 관계라는 것이다. 즉, 장어와 먹장어는 같은 '어류'로 묶일 수 없는 계통에 속한다.
우리는 보통 동물을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어류 등으로 분류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어류'는 사실 조기어류, 연골어류(상어, 가오리 등), 칠성장어류, 먹장어류 등으로 세부 분류해야 진화적, 계통분류학적으로 옳다고 한다. 이는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 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논픽션으로, '어류' 분류법의 변화가 작가에게 커다란 인사이트를 주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인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대 학장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이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물고기들을 수집하고 이름을 붙였다. 계통분류학은 진화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조던은 물고기를 분류하다가 우생학에 빠지고 말았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우생학이 휩쓸면서 끔찍한 법이 만들어지고 실행되었다. 발달이 조금 더디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이나 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심지어 이 법은 아직도 완전히 폐지되지 않고 남아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스텐포드에 있던 조던의 동상은 철거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탐구하던 중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따라가게 된다. 작가의 아버지는 생물학자로, 모든 생명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즉, 인간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이 사상을 주입했다. 이런 사상은 생물학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던 듯하다. 작가는 여러 가지 인생의 어려움을 겪었고, 부족한 자존감 탓에 그것들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지의 생물에게 이름을 붙여 존재 의의를 부여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힘을 얻었으나, 말년에 그가 보여준 끔찍한 우생학자의 면모를 발견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부적절한 불임 수술의 피해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피해자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에 감화를 받아 결국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작가는 "인간은 주위 사람과 연결되어 서로 주고 받는 영향만으로도 빛나는 중요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책이 크게 인기를 끈 이유는 두 가지 메시지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계통분류학, 진화론 측면에서 '어류'에 대한 분류가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달라졌다는 과학적 메시지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자존감이 낮아진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간은 항상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나의 존재와 가치는 무엇인가"를 궁금해 한다. 하지만 내 결론은 '그런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에는 '태어난 이유'같은 것이 없다.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생존 자체가 삶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의 아버지의 생각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물론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너무 삭막한 결론일 수 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공동체적 가치를 믿고, 자존감에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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