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음을 인식하는가 무시하는가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인식하는 존재는 아마도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코끼리는 동료의 죽음을 이해하고 추모하는 행동을 보이지만,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는 불확실하다.

언젠가는 죽고 사라진다는 사실이 명백한데, 인류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갈까?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한데, 열심히 공부하고 부를 축적하며 욕망을 채우기위해 노력한다. 

결국 내려올 산을 왜 오르냐, 집으로 돌아올 여행을 왜 떠나냐는 의문과 비슷할까? 그 행위 자체에 즐거움이 있으면 상관 없다. 치열하게 사는게 재밌고, 행복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힘겨워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점은 아무리 늦어도 30만 년 전쯤일 것이다. 그 이전 시대의 고대 인류도 이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다. 기정된 자멸을 인식한 후, 인류는 신과 사후세계를 만들어냈다. 죽음 이후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는 계속 된다는 믿음이다. 이는 죽음을 극복하는 가장 유서깊은 방법이다.

자손을 낳아 내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도 죽음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자손은 자손이고 나는 나다. 인간은 책을 쓰고,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남기려는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흔적이 남더라도,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볼 수 없다.

나의 육체를 계속 보존하고 싶은 욕망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메게 만들었다. 오래 살고, 영생하기 위해 인류는 오만가지 시도를 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높지 않은 시절, 갓난아기를 이용하거나, 끔찍한 주술을 만들어 행하기도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결국 인간의 뇌는 평소에 죽음을 인식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무의식적인 무시다. 알고 있지만 모른척 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삶을 충실히 살 수 있다. 이는 많은 심리학적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한 실험에서는 두 그룹의 판사들에게 설문지를 작성한 후 경범죄의 벌금을 메기도록 하였다. 한 그룹은 평범하고 의미없는 질문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죽음을 암시하는 문항이 섞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죽은 이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와 같은 질문이다. 결과는 죽음을 인식한 판사들이 그렇지 않은 판사들보다 9배나 높은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평소에 죽음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죽음을 인식한 후 사회를 위해 더 큰 형별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치병에 걸리거나, 노화가 진행되어 죽기 직전에야 죽음을 인식한다. 잘못한 일을 반성하고, 못한 일을 아쉬워하며, 너무 아등바등하게 살았던 것을 후회한다. 살아온 시간에 만족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균수명이 40년이던 시절에는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무시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자손을 낳고, 생존에 애쓰다 보면 눈 깜짝할 새 죽음이 찾아왔다. 사고나 질병으로 순식간에 나의 존재는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인간이 100년을 살게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100년 동안 죽음을 무시하며 욕망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 것인가. 

이제 인류는 무시했던 죽음을 떠올리며, 자신과 세계의 평화를 도모하고 죽기 직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어차피 죽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되는가" 라는 비관적인 사상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어차피 죽는데"를 잊고 사는 존재다. 즉, 본능적으로 열심히 사는 생명이다. 그러나 재앙일 수도 있는 수명의 연장과 탐욕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약간의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더 늦게 죽기에서 더 깊게 늙기로

간헐적 단식이 정말 건강에 유익한가?

[브레인 리부트 Biohack Your Brain], 크리스틴 윌르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