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플레이어 원(영화), 가상현실, VR과 의료

 가상 현실에 대한 욕구는 인간이 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춘추전국시대의 장자는 스스로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데, 너무 사실적인 느낌을 받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내가 나비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상 현실 기술이다.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같이 느끼려면, 오감을 자극하여 뇌가 가상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오감 중 시각에 대해 논하자면, 인간의 시각 능력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많은 동물들이 흑백 혹은 몇 가지 제한된 색깔만 구별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인간은 상당히 다양한 파장을 구별할 수 있다. 개나 돼지 등 후각이 예민한 동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시각에 민감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구석기 시대부터 그림을 그렸다. 동굴에는 구석기 인류의 미술작품이 벽화로 존재한다. 심지어 인간은 꿈에서 본 것이나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상한 것도 그릴 수 있다. 그렇기에 인위적으로 시각을 자극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다. 일부러 착시를 유발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가상현실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과 영화가 발명되고 이후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각적인 가상 현실을 느끼는 기술은 거의 완성되었다. 최근에 출시된 머리에 쓰고 눈 앞에 바로 영상을 보여주는 기계를 사용하면 뇌가 충분히 가상을 현실로 착각하게 할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디스플레이의 해상도가 높지 않아 뇌를 속이기에는 부족한 화질이었는데, 이제는 보급형 기계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각적 가상현실 체험을 할 수 있다. 다만 아직도 한계는 있다. 시점의 문제로 인한 눈의 피로, 현실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화질과 그로 인한 멀미증상 등 진정한 가상 현실을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가상 현실 기술 중에는 소리를 제외한 가장 발달한 기술이고, 조만간 완벽한 디스플레이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청각은 오디오, 스피커의 발전으로 사실상 가상현실 기술로는 완성되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지금 기술로도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구별할 수 없다. 조금만 투자를 하면 이것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실제 옆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알아채기 힘들다.
 
그러나 시각과 청각을 제외한 감각에 대한 기술은 가상현실에 적용하기엔 아직 멀었다. 후각, 미각은 거의 시도조차 못하고 있고, 촉각은 약간의 진동만 컨트롤러에 의해 전달되고 있다. 5감 외에도 평형감각이라는 중요한 감각이 있다. 나의 몸의 방향을 느끼는 감각이 귀 안쪽의 반고리관에 의해 인지된다. 이 감각과 시각이 부조화를 일으키면 우리는 멀미를 하게 된다. 현재 가상 현실 기술의 가장 큰 장애물이 이 3D멀미 증상이며, 이를 해결해야 좀 더 대중적으로 가상 현실이 우리의 삶에 들어올 것이다.

[레디플레이어 원]이라는 작품은 2011년 어니스트 클라인이 발표한 공상과학소설이다. 근미래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공간이 현실사회를 지배하는 배경으로, ‘오아시스의 개발자가 남긴 거대한 유산을 얻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가상공간이 주요 무대이긴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80, 90년 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더 중요하게 여긴 듯 하다. 무대가 2045년인데 오아시스의 개발자는 유산의 힌트를 무려 70년 전 게임과 추억에 남겨둔 것이다. 현재로 따지면 한국전쟁 직후 상황을 공감해야 하는데, 몰입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추억팔이는 너무나 매력적인 아이템이었고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아 영화로 제작되었다. 대규모 설정 보강 및 헐리우드의 최신 기술을 총동원하였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1년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프로토타입의 가상현실 기기가 출시 직전이었고, 2018년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에는 개인이 구매 가능한 기기들이 속속 나오고 있던 시점이었다. 영화의 성공과 함께 가상현실 기기의 붐이 잠깐 왔었지만, 기술의 한계로 몰입감이 떨어지고 멀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 대중화까지는 실패하였다. 결국 가상현실기기 시장은 멀미를 덜 느끼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 위주로 근근이 생태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23년 메타퀘스트 3이라는 기기가 출시되었고, 2024년 애플의 비전프로가 발매되었다. 이 기기들의 시청각적인 기술은 거의 완성 단계로 보인다. 점점 컨텐츠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가상현실이 의료나 치료에 적용될 수는 없을까? 미국의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가상현실 기술을 응용하여 해부학, 수술법 등을 가르치려고 시도 중이다. 또한, VR기기로 허리 통증을 치료하는 방법이 2011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8주간 VR기계를 사용하면서 운동, 자세 치료를 집에서 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효과가 상당히 좋아서 FDA 승인까지 된 모양이다. VR기기를 사용하면 운동의 몰입감은 매우 커진다. 허리 통증 외에도 소프트웨어만 잘 만들어진다면 근골격 질환의 대부분이 VR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등 여러 불안 증상에 대해서도 치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나올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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