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에 대하여.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죽음이 그렇다. 죽음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온다.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This Is Assisted Dying: A Doctor’s Story of Empowering Patients at the End of Life), 스테파니 그린]]은 2016년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조력사망(Medical Assistance in Dying; MAiD)을 진행하게 된 의사의 경험을 엮은 책이다.
조력사망은 약물의 도움으로 죽음을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소극적
안락사’가 현재 호스피스의 개념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약물을 쓰지 않고 고통을 줄이는 선에서 사망을
기다리는 것에 비해, 적극적으로 사망과 관련된 약물을 투여하기 때문에 과거 ‘적극적 안락사’라고 불렸다. 현재는
‘안락사’라는 어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서 ‘존엄사’라고 칭하고 있으며, ‘적극적’이라는 단어도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력 존엄사’라고 부르고 있다. 조력 존엄사에 사용되는 약물은 독극물이 아니라
수면 유도제, 마취제, 근이완제 등 전신 마취할 때 흔히
사용하는 약물들이다. 이 약물을 과다 투여하여 잠을 자듯이 사망하는 것을 유도하는 것이다.
직접 죽음을 기다리기 전, 혹은 죽음을 바로 옆에서 보기 전에는 ‘조력 존엄사’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법, 윤리, 종교 안에서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꺼뜨리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들게 한다. 그러나 의외로 ‘조력 존엄사’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이미 80% 이상이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2023년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었으나 여러 이유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길 수 있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해결 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직접 보게 되면, 오히려 이를 방치하는 것이 바로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의 개념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절대로 생명을 단축시키거나 연장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조력 존엄사’가
필요한 사람의 대부분은 완화 의료로도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일부 환자는
아무리 마취제를 써도 고통을 호소하고, 결국 의식을 잃을 정도로 용량을 늘려야 그나마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즉 호스피스의
개념도 ‘절대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최대한’ 생명을 단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바꿔야 하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시설이나 환경 면에서 조력 존엄사를 호스피스 병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법적인 문제이다. 조력 존엄사 시행 시
결국은 살인죄나 자살방조죄 등 형법, 기타 의료법이나 민법 등 의료진이 법적으로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법으로 가능하게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조력 존엄사 대상자를 △말기 환자에 해당할 것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 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로 규정했다. 합리적인 조건이라고 보이며,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조건들로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력 존엄사를 ‘허용한다’라는 방식의 법안은 정서적인 거부감을 들게 할 수 있다. 조건에 해당되는
경우 모두 조력 존엄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필자의 방안은 ‘조력 존엄사법’을 입법하기 보다, 상기
경우에 시행된 조력 존엄사건에 대해서 형법, 민법, 의료법
등에 ‘면책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조력 존엄사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덜 할 수도 있음을 기대해 본다.
조력 존엄사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누구나 동의하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조력 존엄사를 시행해야 되는지 애매한 상황이 매우 많다. 말기 암 외에도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여러 질환들, 치매와 같이
인지능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들도 고려해야 한다. 또 조력 존엄사를 결정하고도 시행 직전에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존엄사를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환자는 조력 존엄사를 원하나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이 책에 여러 케이스가 나오니 관심 있는 분은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조력 존엄사’를
시행한다면, 이를 체계적인 ‘의식’이나 ‘예식’처럼 정해진
식순으로 시행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장례식의 장면을 보면,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하는 작별 인사들을 직접 고인이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느낀다. 조력 존엄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외에도 이런 소통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술적인 측면에서, 환자, 의료인, 가족이나
증인, 이렇게 3명이서 버튼 3개를 동시에 누르면 약물이 주입되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존엄사는
환자를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되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이지만, 생명을 꺼뜨린다는 무거운 책임이 있기에, 이를 형식적으로나마 분산시켜 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작별 인사를 전하고, 잠을 자듯이 사망하는, 누구나 바라는 이상적인 죽음의 상황은 100명 중 몇 명이나 가능할까. 요양 병원에서 일 할 때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말기 암 환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불안에 떨면서 살다가 갑자기 의식이 흐려져 인사조차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캐나다의 경우 조력 존엄사가 가능한 환자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조력 존엄사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빨리
평안해지기를 바란다.
댓글
댓글 쓰기